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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0 화) 건업은 뜨는 해 낙양은 지는 해
 
이순복   기사입력  2016/02/18 [10:05]

 형주를 소란하게 하던 두목 도두가 낭야왕이 칼을 빼어 들고 수하를 시켜 치라하자 고심했다. 이런 두목의 고충을 보고 수하 소두목이 양책을 내자 도두가 이 말을 신용하여 낭야왕에게 직접 항복하기로 하고 항서를 써서 건강으로 보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주자사 왕징이 음주와 연락을 일삼아 정사를 게을리 하자 고을의 벼슬아치들이 마구 백성을 착취하여 백성의 삶이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부득이 무리를 지어 노략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천하에 덕망과 명망이 높은 주이자사가 새로 도임하게 되었다하기에 전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양민으로 돌아가고자 이에 항서를 드리는 바이니 너그럽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낭야왕은 도두의 표문을 보자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이를 왕도와 상의하자 왕도도 무력을 행하지 말고 덕으로 감화시켜 초안하는 것이 이롭다고 하면서 그들의 죄를 불문에 붙인다는 전지를 내렸다.
 형주자사 주이는 도두의 무리들이 낭야왕에게 항서를 올리고 양민으로 돌아갈 것을 자청했다는 말을 듣자 친히 도두를 찾아서 이릉으로 갔다. 주이가 찾아오니 도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써서 주이에게 양민이 되기를 맹세하였다. 주이는 도두의 무리가 일시의 세를 못 이겨 항복하는 것이 아님을 간파하고 도두를 낭야왕에게 청하여 파동의 감군으로 임명해 주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한동안 어지러웠던 형주는 다시 평온을 찾게 되었다.
 성도의 이웅은 이런 소식을 전해 듣자 이를 갈면서 크게 분해하며 중얼대기를
 ‘아직도 진조의 명운이 남아 있단 말이냐.’
 한편 심사숙고 끝에 군사를 형주까지 보내어 도두를 토벌하려고 갔던 도간과 왕돈은 도두가 스스로 항서를 받쳐서 할 일이 없어지자 회군하였다. 일이 이처럼 술술 잘 풀리자 도간이 왕돈에게 말하기를
 “과연 주백인은 명불허전의 명장인 것 같소. 장차 낭야왕을 도와 반드시 큰일을 할 인물임에 틀림없소.”
 그러자 왕돈은 무엇을 느꼈는지 가볍게 웃으며 대꾸하기를
 “장래에 조적과 주이의 힘을 입어 낭야왕이 진조의 대권을 잡을 것이오.”
 이들의 말이 씨가 되어 후일 낭야왕 예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건업에서 진조(이하 서진의 회제와 동진의 낭야왕을 구별하여 적는다.) 의 대통을 이어 동진의 원제로 등극하니 그때가 진회제 영가 2년이고 한의 원희 4년(AD309년) 9월이었다. 이때 한의 우승상 수지는 여러 날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한주가 궁금하여 근신에게 묻자 우승상이 병석에 누워있다고 대답했다. 한주는 난가를 내어 친히 제갈승상의 부중으로 병문안을 하려고 찾아가니 제갈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주는 친히 우승상의 와탑 가까이 가서 근심스럽게 묻기를
 “승상은 어디가 불편하여 여러 날 기침하지 못하시오. 기탄없이 말해 보시오.”
 “근심이 쌓여서 병이 되었사옵니다. 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옵니다.”
 “근심이라니 무슨 근심이오? 어서 말해 주시오.”
 한주가 근심이 되어 우승상의 이마에 손을 얹고 묻자 탄식하며 말하기를
 “신이 폐하를 모신지 어언 1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비록 중원을 수복하지 못하였으나 한의 국호를 천하에 선포하고 다시 한실의 사직을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미구에 낙양과 허창 장안을 취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근자에 듣자하니 저족의 이웅이 참람(僭濫)되게도 폐하에 앞서서 성황제를 참칭하여 옛 촉한의 땅에다 뿌리를 굳히고자 한다하니 이 어찌 신의 근심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문무의 관원들은 신과 마찬가지로 하루 속히 진을 멸하고 나아가서 성을 멸하여 지난날 소열황제 폐하와 신의 조부가 이룩하지 못한 천하일통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진충갈력하고 있는데 폐하께서는 우리의 고토를 큰 연고도 없이 점유한 이웅의 횡포를 보고도 입을 닫고 계시니 어찌 근심이 아니 되겠습니까.”
 한주 유연은 선뜻 깨달은 바가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한주는 여러 번 중신들에게서 황제의 위에 오를 것을 종용받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중원을 차지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되풀이 해왔다. 중신들은 한주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유요를 시안왕이라 부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황제의 위에 오르는 것을 미루어왔다. 그랬던 것이 이제 제갈선우가 중신을 대신하여 칭병하며 행동으로 은근히 강요한다는 것을 깨닫자 한주의 가슴은 무한히 괴로웠다. 한 동안 생각에 잠겼던 한주는 무겁게 입을 열어 말하기를
 “승상의 병이 쾌차할 때를 기다려 서서히 그 얘기를 결정짓도록 할 터이니 하루 속히 일어나도록 조섭이나 잘 하시오.”
 한주에게서 이 말을 들은 제갈승상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밖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치기를
 “거기 누가 없느냐. 어서 좌승상과 간의대부와 어사대부를 드시게 하여라.”
 제갈선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좌승상 진원달과 간의대부 서광 어사대부 유광원 최유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한주는 깜짝 놀라하며 중신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묵묵히 한주에게 머리를 조아리자 제갈승상은 세 중신을 향하여 얼른 입을 열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마침내 우리의 청을 윤허하셨습니다. 어사대부께서 속히 길일을 택하여 대례를 봉행토록 하십시오.”
 한주는 어이가 없어 하며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기를
 “우승상이 기어이 꾀병을 써서 고를 궁지에 몰아넣었구려.”
 한마디 하고는 진원달과 여러 중신을 대동하고 환궁하였다. 제갈선우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한주를 따라 입궐하였다. 이리하여 한주 유연은 AD308년 10월초 갑자일에 황제의 위에 올라 원희의 연호를 영봉이라 개원하였다.
 황제의 위에 오른 유연은 곧 중신을 모아 놓고 다시 낙양을 칠 계책을 세울 때였다. 호사다마였을까? 어디엔가 탈이 붙었든가 유주자사 왕준을 공략하려 나갔던 유영과 강발의 하북초토군에서 파발마가 와서 비보를 전하기를
 “유영장군이 왕준의 암계에 빠져 원통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유장군의 죽음은 황제의 즉위식을 마치고 축제의 기분으로 들떠 있던 한실의 안팎을 슬픔과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황제 유연은 비통한 나머지 용상에서 혼절하여 쓰러졌다. 근신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어사대부 유광원은 황제에게 재빨리 달려가 부축해 일으키고 내시를 불러 안으로 모시게 하자 태의가 달려왔다. 진맥을 보고 약을 지어 받치고 수족을 주무르자 간신히 황제가 정신을 되찾았다. 황제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실신한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만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이에 좌승상 진원달이 조용히 아뢰기를
 “모든 것이 다 막비천명(莫非天命)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옥체를 만중하옵소서. 만약 폐하께서 옥체를 돌보지 않으신다면 폐하를 따르고 있는 수많은 억조창생은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황제 유연은 길게 탄식하며 힘없이 말하기를
 “유영은 과인과 생사를 함께하자고 맹세한 과인의 혈육인데 지금 그가 죽었다하니 어찌 과인이 슬픔을 참을 수 있겠소. 과인이 친히 유주로 나가 왕준을 사로잡아 이 원수를 갚기 전에는 골수에 맺힌 원한이 씻어질 것 같지 않구려.”
 우승상 제갈선우가 아뢰기를
 “우선 폐하의 옥체가 쾌하신 연후에 그 문제를 조의에 붙이도록 하옵소서. 신등은 일단 물러가겠사오니 폐하께서는 부디 옥체를 만중하시기 바라옵니다.”
 중신들은 황제를 위로한 다음 조당으로 물러나왔다. 만조백관들은 모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제갈승상은 백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진원달과 함께 황제의 용태를 지켜보았다. 한참 만에 우승상이 진원달에게 조용히 묻기를
 “내일 폐하께서 기침하시면 반드시 군사를 내어 친히 진의 왕준을 치려고 하실 것인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내가 헤아려 보건대 아직 진조의 명운이 강성하니 결코 무모한 군사를 내어서 이로울 것이 조금도 없을 것 같소이다.”
 진원달이 한숨을 내어 쉬면서 대꾸하기를
 “신하된 자는 마땅히 임금의 옳지 못한 일을 간하는 것이 본분이 아니겠소. 우승상과 내가 힘을 합하여 최선을 다해 폐하를 간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아마도 이번에는 우리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소이다. 참으로 애달픈 일이구려.”
 저녁이 되자 태의가 밖으로 나와 두 재상에게 황제의 용태를 보고하기를
 “지금은 폐하께서 잠이 드셨습니다. 한잠 주무시고 나면 쾌차하실 것 같사오니 두 분께서는 집으로 돌아가 쉬시도록 하십시오.”
 그날 밤 두 재상은 귀가하고 황제는 단잠을 이루고 몸이 다소 편해졌다. 다음날 날이 밝자 두 재상은 중신들보다 한걸음 먼저 입궐하였다. 그런데 황제는 이미 새벽에 일어나 홀로 뜰을 거닐고 있었다. 내시의 안내로 두 재상은 황제를 찾아가 뵈었다. 황제는 두 재상이 다가오자 크게 반가워하고 함께 편전으로 들어가 아침상을 받았다. 황제의 용태는 평상시와 같았으며 수라도 적절히 드시며 두 재상의 눈치를 한동안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기를
 “아무래도 크게 군사를 일으켜 북쪽의 왕준과 낙양을 함께 쳐서 죽은 유영의 혼을 위로하여야만 과인의 분이 풀릴 것 같소. 경들은 모름지기 계책을 세워 과인의 굳게 먹은 뜻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오.”
 이에 제갈승상은 예상한 바 있으나 크게 놀라워하며 결연히 반대하기를
 “북쪽의 왕준은 대군의 척발의로와 혈연을 맺어 서로 돕고 있사오니 가볍게 깨칠 수 없사오며 노회한 구희가 지금 업군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사오니 지금은 북벌의 시기가 아닌가 하옵니다. 그 보다는 좀 더 군마를 길렀다가 때가 이르면 곧 낙양으로 직접 충돌해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옵니다. 낙양이 한번 깨어지기만 하면 지방의 제후들은 스스로 붕괴되기 마련이옵니다. 굳이 먼 북벌을 하여 군마의 손실을 가져올 필요가 없사옵니다.”
 “경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시안왕에게 다시 군사를 주어 낙양을 치도록 하고 상당군후에게 군사를 이끌고 허창을 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구려.”
 한주가 그리 말하자 이번에는 진원달이 나서며 간하기를
 “신이 천문을 보건대 낙양에는 아직도 왕기가 성하옵니다. 그러나 동해왕은 머지않아 스스로 망할 것 같사오니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진조에 이변이 생겼을 때를 타서 들이친다면 힘들이지 아니하고 중원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황제 유연은 유영의 죽음만 생각하고 슬퍼하며 고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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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18 [10:05]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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