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미의 부장이 영을 받고 장기가 악을 내지르는 면전으로 나와서 군사들을 시켜 장기를 향하여 소리치게 하였다.
“우리 장군께서 지금 아침 식사를 들고 계시니 좀 기다려라.”
장기는 그 말에 크게 반응하기를 불같이 성을 내며 악을 질러 수하 병사들을 불렀다. 그리고 엉뚱하게 명령을 내리기를
“모두 다 들어라. 지금부터 한진을 여지없이 들이쳐라.”
진병들은 장기의 위세에 눌려 겁을 잔뜩 먹고 내키지 않는 싸움을 시작하였다. 진병들이 한진 앞으로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니 기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장기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마치 미치광이처럼 날뛰었다. 그런데 한진에서는 그때 서야 슬그머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왕미가 느릿느릿 말을 몰아 모습을 드러내자 장기가 크게 성을 내며 불분곡직하고 왕미에게 달려들자 왕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이제 다 떠들었느냐. 네가 저승에 가기 전에 남길 말은 없느냐?”
“늙은 도적놈아, 내 기어이 네놈을 붙잡아 몸뚱이를 만 갈래로 찢어 놓겠다.”
장기가 창을 휘두르고 달려들자 왕미는 여유 있게 창을 피하며 또 말하기를
“네가 그토록 죽기를 원한다면 오늘은 너의 소원대로 죽여줄 테니 피차간에 군사들은 뒤로 물리고 단둘이 사생결단을 하고 싸우면 어떻겠느냐?”
왕미가 그리 말했을 때 서북쪽에서 포성이 산천을 뒤흔들며 울리고 함성이 요란한 가운데 일지군이 세차게 짓쳐 나왔다. 왕미와 장기는 싸우는 것을 멈추고 서북쪽을 바라보았다. 둘은 다 같이 궁금해서 눈여겨보는데 장기가 먼저 알아보고 소리치기를
“왕미 이 늙은 도적놈아, 눈을 까뒤집고 잘 보아라. 우리에게 구원군이 당도하였다. 근왕병이 일어나 네놈들을 까부시려 달려온 것이다.”
내닫는 새로운 일지군을 왕미도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은 한군이 아니고 진병이었다. 서량자사 장궤가 대장 북궁순 영호아 왕풍 등 여러 장수를 보내 회제의 조명을 따른 것이다. 서량의 구원군은 성난 파도와 같이 한진을 덮치자 한진에서는 호연안은 북궁순을 맞고 양용이 영호아를 맞고 환원관에서 귀순한 산적 두목 장걸과 서과가 왕풍을 막았다. 서량의 장졸은 대부분 저강의 광포한 군사들로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한군은 시간이 갈수록 힘이 달려 밀리기 시작했다. 북궁순의 독한 창날이 먼저 산적 두목 장걸의 목을 꿰뚫어 낙마시켰다. 그런가 하면 왕풍도 북궁순에게 뒤질 새라 대도를 휘둘러 서과의 허리를 두 동강내어 낙마시켜 버렸다. 이들 두 산적 장걸과 서과는 개과천선하여 는 새 세상을 만나 한장이 되었건만 힘이 달려서 원통하게도 전사하고 말았다. 왕미는 이와 같이 허망하게 2장을 잃자 퇴군을 생각할 때 호연안의 전령이 달려와 전하기를
“호연안장군이 일시적으로 철군하여 불리한 싸움을 수습하자고 했습니다.”
전령이 이와 같이 전하고 가자 왕미는 즉각 반응하여 퇴군령을 내리기를
“물러가자! 적의 예봉을 피해 물러나라!”
한군은 사기를 잃고 달아나는데 장기와 북궁순은 후퇴하는 한병을 악착같이 따라붙어 시살했다. 서량군과 진병의 기세가 어찌나 강력한지 한군은 다투어 달아나다가 서로 밟고 짓밟혀 죽는 자가 창칼을 맞아 죽은 자 보다 더 많았다. 죽어 넘어진 것은 한군이요 죽이는 자는 진병이었다. 얼마간 달아나다보니 한군의 시체가 길을 막고 도랑을 메워서 흉물스럽게 널려있었다. 이 싸움에서 한실은 10만 대병 중 5만을 잃고 호연안은 서하로 왕미는 포자현으로 도망하여 간신히 운신을 하게 되었다. 진의 원수 상관기는 북궁순을 대동하고 보무당당하게 낙양으로 개선했다. 태위 왕연은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성 밖으로 나와 개선장군 북궁순의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만약 장군의 구원이 늦었다면 한적을 이같이 신속하게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요. 참으로 장군의 공이 크오. 내 천자께 아뢰어 장군에게 응분의 봉작을 내리도록 하겠소.”
이날 낙양은 승전의 기쁨으로 물결쳤으며 축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다들 마음이 둥둥 들떠서 모처럼 활기가 넘쳐흐렀다.
다음날 회제는 이번 싸움에서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벼슬을 내리니 장기는 거기장군이 되고 그 동생 장긔는 표기장군이 되며 상관기는 대도독이 되었다. 또 북궁순에게는 중외효충 호국대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왕병충 왕풍 영호아 등 여러 장수들에게도 응분의 관직을 빠짐없이 내렸다.
한편 서하에 이른 호연안은 대원수 유총에게 낙양의 패전을 보고하였다. 유총은 크게 놀라 그날로 표문을 닦아 평양으로 올리니 그 표문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왕미와 호연안이 양로군의 선봉이 되어 낙양을 공략했으나 뜻하지 않게 서량구원병이 나타나 합세하므로 대패했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호연안은 서하로 왕미는 포자현으로 물러나 패잔병을 수습하고 잔명을 보존했습니다. 하오나 참담하게 대패하고 나니 신등은 면목이 없어 주수를 뵐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제2로의 도독 석늑으로 하여금 제1로와 합쳐서 낙양을 공타하여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
패전으로 인한 가슴 아픈 참담한 사연이었다. 한주는 이와 같은 유총의 표문을 받고 크게 노하였다. 그는 곧 조서를 내려 제1로의 도독 시안왕 유요를 불러들였다. 유요가 한주 앞에 이르자 그를 준엄히 꾸짖기를
“그대는 어찌 왕미와 호연안 2장에게만 낙양을 치게 놔두었느냐. 벌써 일신의 편안을 도모하려 하느냐. 즉시 그대가 친히 낙양을 쳐서 원수를 갚도록 하라.”
한주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은 유요는 개연히 밖으로 나와 곧 15만 대병을 휘동하여 낙양을 향하여 진격했다. 전승의 기쁨을 누린 것도 며칠 되지 않았는데 낙양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의 유요가 15만대병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급보를 받은 회제는 다시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곧 상관기와 장기형제 그리고 북궁순을 불러 적을 막을 계책을 세우라고 칙명을 내렸다. 이에 상관기 등은 다시 낙양성 밖으로 나가 요소마다 채책을 엄히 묻고 한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유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평양을 떠난 지 10일 만에 낙양성 부근에 당도했다. 유요는 친히 여러 장수와 함께 진병의 형세를 살펴보니 이미 요소요소마다 채책을 묻었고 엄히 지키고 있었다. 유요는 진의 상관기에게 전서를 보내어 명일 조조에 주수회담을 하자고 제의했다.
다음날 유요가 먼저 마상에 높이 앉아 동편을 들고 진문 앞으로 나오자 상관기도 장기형제를 거느리고 늠름하게 나타났다. 이를 본 유요가 동편을 들고 적장을 가리키며 꾸짖기를
“너희들은 하늘에 응하고 저절로 돌아오는 때를 알지 못한단 말이냐. 전날에 성도왕과 육기가 백만군을 가지고 우리를 꺾지 못하였는데 이제 너희들이 몇 만의 군사로 낙양성을 지키겠다고 나오니 가소롭구나. 내가 없는 사이에 우리 장수가 불의의 습격을 당하여 지난 싸움에 일시 패했지만 이제 20만 정병이 다시 이곳에 왔으니 눈이 있다면 잘 살펴보아라. 그리고 살려거든 속히 항복하여 목숨을 살리고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도록 하라.”
상관기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성급한 장기가 앞으로 나와 대꾸하기를
“대조가 너희들을 섭섭지 않게 대접했거늘 어찌 이리 무엄하냐. 천자가 여기 계심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들이 으뜸으로 여기는 장수 왕미와 호연안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난 줄 모르느냐.”
유요는 발끈 성을 내며 동편을 휘두르며 말을 앞으로 내어 몰며 호통 치기를
“너는 이름도 없는 애송이가 감히 고에게 대꾸하여 무례를 범하는구나.”
장기도 지지 않고 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앞으로 나오니 2장이 곧장 부딪쳤다. 하나는 심산계곡과 험난한 암벽을 종횡무진으로 누비었던 팔팔 뛰는 범이라면 하나는 무진장 높고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호풍환우(呼風喚雨)를 능수능란하게 지어내는 용이다. 장기는 범이고 유요는 용으로 둘이 5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젊고 팔팔하던 장기가 차츰 조급증이 나는 모양이다. 그러나 유요는 동편의 움직임이 한결 같았다. 장긔는 아무래도 형이 공을 서두르다가 실수를 할까 염려하여 급히 말을 몰아 내달으며 유요의 뒤를 덮치려고 했다. 이에 한진에서 관산이 벽력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청룡언월도를 비껴들고 내닫으며
“네 이놈, 감히 우리 전하를 엿보느냐?”
장긔는 형을 구원하기 전에 관산에게 저지당하자 이를 막으려고 칼을 휘둘러 관산과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장긔의 칼은 관산의 칼에 막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것을 본 북궁순이 급히 도끼를 들고 내달아 장긔를 도우러하자 이번에는 관방이 선 뜻 북궁순을 막고 나서서 청룡언월도를 들이 대었다. 3 : 3의 혈투가 전개되었다. 한과 진의 6장이 치열하게 혈전을 벌리었다.
이때 관산의 동생 관심이 한 계책을 생각하여 얼른 말에서 내려 철태궁과 낭아전을 비껴들었다. 그리고 군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힘껏 철태궁을 당겨 낭아전을 북궁순을 향하여 쏘았다. 화살은 핑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북궁순이 탄 말의 목덜미에 적중되었다. 말이 크게 놀라 포효하면서 천방지축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북궁순은 낙마를 면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말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관방은 이를 놓칠 새라 북궁순의 뒤를 힘차게 쫓았다. 이를 본 상관기와 왕병충이 급히 군사들을 시켜 화살로 쏘게 했다. 이에 관방은 북궁순을 버리고 화살을 피하여 말머리를 돌렸다.
이때 호시탐탐 전기가 도래하기를 노리고 있던 한장 황신은 일제히 군사를 휘동하여 서량군을 들이쳤다. 서량군은 주장 북궁순이 달아나자 겁을 먹고 주저하다가 황신이 이끄는 벌 떼 같은 한군을 만나 크게 패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량군이 뭉그러져 달아나자 상관기가 이끈 진병도 따라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상관기가 군사를 붙들어 세우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으나 군세를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장기형제도 유요와 관산을 버리고 군사들을 따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요는 전군에 돌격령을 내리고 친히 진두에 나서서 동편을 휘두르니 맞닥치는 진병이 살아남는 자가 거의 없었다. 이날 싸움에서 진군은 1만군이상 사살되고 한군은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영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