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는 손님마다 고좌수의 덕을 칭송하고 명복을 빌어 줄 때는 애간장이 다 쏟아질 것 같았다. 송구스럽고 면구해서 온몸에 진땀이 흘렀다. “형님 몸이 거북하게 보이는데 들어가 쉬시지요.” 곁에서 보다 못해 호성이 한 마디 했다. “몸은 편치 않다만 내가 어찌 자리를 뜰 수 있겠느냐. 염려 마라.” 조용하게 한마디하고는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시간은 더디 가고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의 강도는 더해 갔다. 진설을 하고, 제를 올리고, 절을 올리려니 예법에 맞게 할 일은 다 했으나, 미치고 펄쩍 뛸 것만 같았다. ‘허깨비 놀음이다. 이 무슨 빈껍데기란 말이냐? 허수아비, 꼭두각시, 내 평생이 이런 것이란 말이야! 땅아! 인간아! 지신에 탈이 붙었느나? 내가 무슨 놀음을 하느냐? 무슨 춤을 추느냐? 내가, 이 고명하가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헛깨비가 되어 껍데기 춤을 추고 있단 말이냐!’ 고공은 향불을 피우고 파란 연기 위에 술잔을 세 번 원을 그린 후 잔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을 듯하더니 “으흐흐흐, 으흐흐흐.” 입에서 침을 지르르 흘리더니 싸이코 환자처럼 웃고 말았다. “형님! 형님!” 호성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고공은 술잔을 젯상을 향하여 힘차게 던져 버렸다. “형님! 형님! 형님 왜 이래요. 왜?” 호성의 단말마와도 같은 울부짖음이 야수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여보오. 흐흐흐흑.” “아부지! 아부지!” 송씨부인이 절망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자, 윤심을 비롯한 딸들이 호곡을 쏟아 놓았다. “안정을 취해야 겠어. 얼마나 아버지를 지극히 사모했으면 그리 되겠어. 어서 안으로 모셔.” 송영감이 지켜보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천수와 덕구, 덕만이 고공을 안사랑으로 데려갔다. “아니다. 아니 야. 이등신아! 이 허깨비야! 이 껍데기야!” 고공은 헛소리를 했다. 그리고 발광했다. 정신계통이 일시에 헝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리에 밝은 송영감에 의해 모두 감추어지고 잔치를 찾아온 손님들은 최대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표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화창한 날씨 덕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손님들로 와동마을 이 들끓고 있었다. 마치 배꽃이 난무한 듯하였다. 흰옷 입은 백성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광경이었다. 오는 이 마다 빈손으로 오는 이는 없었다. 다들 성의를 다하여 부조기에 부조금을 기록하고 고좌수의 영전에 경건하게 재배했다. 상주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고공은 보이지 않았으나, 제례는 차질 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리고선 휘장과 차일이 일렁거리는 잔치상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술을 마셨다. 점심 무렵이 되니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선인이 즐기는 윷판은 여지없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야! 숫이야!” 윳놀이가 한창 어울려지고 있었다. “우와! 우와!” 판이 난 모양이었다. 윷꾼과 말꾼이 일어서고 돈놀이를 같던 사람들이 몫을 찾겠다고 웅성거렸다. 이러한 놀이는 더구나 농한기라 자못 그 판이 컸고,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런가 하면 으슥한 골목에는 과음으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체 쓸어져 잠이 든 사람도 있었다. 남사당패는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찾아와서 양지바른 울타리 밑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품바패도 깨어진 바가지와 깡통을 차고 와서 기웃거렸다. 그런 가운데 무심한 해는 일락서산으로 떨어지고 시뻘건 저녁놀을 피를 토한 듯 널어놓았다. 웬지 서러운 밤이 밀물처럼 닥쳐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고공은 만리장성 같은 내용의 편지를 송씨부인에게 써 두고, 마치 고좌수가 떠날 때처럼 하현달을 등지고, 굴개 방축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축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온 흔적이란 말이냐? 이것이 땅이 됐단 말이냐? 땅, 땅, 땅이 되었단 말이냐? 허지만 땅아! 땅아! 땅아! 내 비극은 땅에서 시작되었다. 땅에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땅이 탈을 낸 것이다. 지신이 성을 낸 것이다. 지신탈이 난 것이다. 내 비극을 걷으러 갈련다. 땅아! 이제는 아버님을 찾아가야 돼. 아버님을... 아버님을 찾아가련다.’ 고공은 한동안 방축을 위를 서성이다가 동쪽 수문등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열병환자나 몽유병자처럼 새로 난 들길을 뚫고 천마산길을 탔다. 어머님의 산소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믿고 모신 묘를 향하여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우리 어머니와 나란히 계신 당신은 누구시오? 당신은 인간이요? 아니면 짐승이요? 아니지. 인면수심이라던가? 아니 그것도 아니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 짐승, 으흐흐흐. 이 더러운 인간아! 인간아! 죽어지면 한줌 흙인데, 이 인간아! 으흐흐흐. 그러나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오. 그냥 그대로 두고 내가 떠나기로 했소. 명당이 다 무엇이며 원한이 다 무엇이요? 다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는 한 토막의 꿈같은 것이 아니요. 아침 이슬 같은 인생인데 말이요, 두둥실 떠가는 구름 같은 세상인데 말이요. 나는 뜻하지 않게 만석 재물도 쥐어 보았소만, 이제 보니 남는 것은 어리석은 껍데기뿐이었소. 한 분뿐인 아버지께도 불효자였소. 다 소용 없는 일이었소. 부질없는 짓이었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연습일 뿐이란 걸 알았소. 그러나 내가 한마디 꼭 한다면 당신도 껍질만 쥐고 껍질을 쫓다가 거기 빈껍데기가 되어 누어있는 것이요. 나는 인간이 싫소. 인간이 모두 싫단 말이요. 이 인간아! 이 인간아! 이젠 한줌 흙일뿐인 인간아!” 고공은 한동안 주인 모를 무덤을 향하여 비웃고 나서 어머님의 무덤으로 갔다. “어허허허. 어허허허.” 고공은 한동안 산천이 떠나가라 통곡을 했다. 애와 간장과 쓸개가 녹아내리는 호곡이었다. 얼마나 몸부림치며 울었던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고공은 한동안 숨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정신을 바로 하고 무덤속의 어머님을 향하여 입을 떼었다. “어머님! 소자 떠납니다. 다시는 여기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손바닥으로 가리고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이 낯짝 하나 체면 치례 때문에 떠납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님이 시방 금강산 유점사에 계십니다. 남은 세월 동안 아버님을 모시고 절에서 살다가 절에서 죽을 랍니다. 남이 부끄러워서, 하늘이 두려워서, 인간이 싫어서, 내 땅도 싫어서 떠납니다. 고개를 들고 살수가 없습니다. 멀쩡하게 살아 계신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지 뭡니까. 어머님 제가 진짜 허깨비지요. 알갱이가 없는 껍데기지요? 허수아비지요? 꼭두각시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어머님 다 잊을 랍니다. 허망한 지난 시간들을 다 잊을 랍니다. 땅도 잊고, 추악한 인간들도 잊으렵니다. 껍데기는 명년이 없습니다. 껍데기는 새싹이 돋아나지 않아요. 빈 쭉정이나 껍데기는 매 한가지 아닙니까? 어머님! 용부가 왜놈 병대에 끌려갔습니다. 정영 혼이 계신다면 하나뿐인 어머님 손주를 돌보아 주십시오. 그 녀석은 껍데기가 되지 않게 말이요.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말이요. 쭉정이가 되지 않게 말이요. 으흐흐흐.” 고공은 할 말이 많았으나, 다 부질 없는 짓이라는 것을 느끼고, 한차례 냉소를 짓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차원을 달리한 세계로 나아가는 첫발이었다. 어쩜 점화가 걸었던 그 길로 찾아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미움을 모르는 세계, 생명이 있는 세계로 찾아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땅아!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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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순복 (1946년 고흥산) 소설가. 언론특별문학상 수상 영계의 권위자(6경신수행.독각.) 대한문인협회 대전지부 백수문학 동인 대덕문학 부회장 브레이크뉴스 논설위원 제갈삼국지 현대주간신문과 금강일보에 연재완료 속삼국지 대전타임즈 연재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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