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묘한 것이라 그 사유하는 것이 행과 불행을 겹쳐 이야기하기도 하고 공과 과를 포개어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공이 재산을 털어 넣어 바다를 막아 옥답으로 만들어 내자 그때에 비로소 사람들은 최익손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최익손의 이름이 회자되자 설왕설래 오고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좌중의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 사람은 시운을 몰라. 너무나도 융통성이 없이 꽉 맥힌 사람이라.” “익손이 그 사람 모과 맹기로 빡빡하고 융통성이라고는 씨도 없는 사람 아니던가요.” “그래, 제 것밖에는 모르는 독새 같은 사람이제. 남의 것 안 먹고 내 것 남 안주고... 도척이야.” “그러니께 처자식을 무시 짜르듯 딱 짤라서 동서남북으로 떠나 보냈제...” “그렇지만 사람은 진국이지라.” “진국이면 뭘 헐 것인가, 시운을 모르는 진국이 어디 쓸데가 있다던가.” “듣자니 잠두실 즈그 누이댁에서 몇 차례 보였다는 소문도 있었는디...” “글씨 말일세. 성돈만씨가 하는 말인디, 천마산 아래 배다리에서 최익손이를 만났다는 말도 있더라고...” “그러건, 저러건 어디서 비럭질을 하는지? 고공이 적덕을 베푸시고, 더하여 개간한 뻘땅을 5년씩이나 내어놓은 판국인디. 익손이는 어디서 뭘 하는지? 헌디 그 놈으 고집이라니... 시퍼렇게 살았을 것인디... 재산을 돌려준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인디, 뻑뻑 우기고 나타나지 않으니... 그 속에 무신 꿍꿍이속이 들었는지 누가 알 것소.” 최익손을 두고 시작된 이야기는 한이 없었다. “어험, 익손이 얘기는 그만 두고 누가 작답을 제일 많이 했당가?” 송영감이 석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구, 제야 인제는 농사짓기 틀린 사람이라 뭘 알 것소. 뻔질나게 일 잘하는 본동이 잘 알제.” “하하하. 그려. 본동의 말로는 찬샘골 밑에다가 여나무 마지기 갈개를 메서 벌써 물을 넣고 우러낸다는 이야기를 허데만.” “맞어요. 본동이 젤 좋은 자리 찾이했지라. 금년에 맘대로 소출을 볼 것이요. 영감님.” 와동에서 제일 힘이 좋다는 아들을 둔 천수집사 형님의 말이다. “으하하하. 다들 살판났구만, 살 판 났어.” 송영감은 온통 주름 투성이인 얼굴을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 때 천수집사가 노란 편지 봉투를 우체부로 부터 받아들고 안사랑 앞에서 “주인 어른, 우체부가 편지를 두고 갔습니다.” “응, 편지야, 어디서 온 건데?” “겉봉에 발신인 주소가 없습니다.” “그래. 이리 놓게.” 고공이 편지를 받아들자.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어서 나가 봐. 어서.” 천수집사가 나가자 무심코 편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창가로 갔다. “아니...?” 깜짝 놀란다. 그리고 어깨가 들썩이도록 한숨을 크게 내어 쉰다. 그리고 몹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피봉을 살펴보았다. 노란 봉투였다. 봉투가 얇은 것을 보면 내용이 간단한 모양이다. 그때 옷자락을 펄럭이며 송씨부인이 들어왔다. “어인 일로...?” “다름이 아니라, 간척지를 지을 사람들이 뭘 자꾸 가져온 모양이요. 어째야 할는지? 농감이랑 천수집사가 곤욕을 치룬다요.” “물목을 부조기에 적기나 잘 하라지.” 고공은 편지를 든 채 송씨부인을 멀건히 바라보며 말했다. “시키기는 그렇게 했습니다만...” “그럼 됐어. 싱거운 사람들 나한테는 그런 내색도 안 터니...” 고공은 혼자 말처럼 그렇게 지껄이고, 다시 편지를 살펴본다. 글씨에 눈이 닿자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둘거리며 이마에 땀이 맺혔다. 등골에서는 찬바람이 났다. ‘어찌된 일일까?’ 고공은 서체를 한동안 다시 살피고는 편지를 꺼냈다. “이게 어인 일인고...!” 아버지 고좌수의 편지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낸 편지였다. 고공은 편지를 들고 퍽 쓸어졌다. 앞으로 꼬구라진 것이다. “여보! 웬 일이요? 여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공을 부축했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하시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해요.” 고공은 겨우 말했다. “알았어요.” “그래 그러면 자리를 펴 주시오.” “알았어요.” 송씨부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하고 고공을 이끌어 자리에 눕혔다. “저기. 저, 청심환 좀 주시오.” 고공은 청심환을 청해 먹었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여보 귀 좀 가까이 해요.” 별 일이었다. 시집와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귓속말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고공이 아내의 귀를 빌리자고 했다. 송씨부인이 다소고지 남편 고공에게 귀를 대어 주자 고공은 긴 한숨을 뱉어내어 남자 특유의 담배냄새를 진하게 풍겼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번 신음을 뱉고는 그의 입에서 예상치도 않는 경천동지할 정보가 흘러나왔다. “무엇이라고요?” 송씨부인은 기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조용히 해요. 조용히...” 고공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아내 송씨에게 다시 다짐을 두어 말했다. ‘이일을 어찌해야 할까? 돌아가신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니! 이일을 어찌해야 하나?? 이 경천동지할 일을 어찌 견딜까? 내 체면은...? 당장 내일 닥친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생각으로 고공은 고민하고 있었다. 방안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고 고공부부의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 그것이었다. 차라리 예수교에서 말하는 부활이란 것이 있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시 소생했다고 선전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었다. “여보 어쩌면 좋겠소?” “조용히...” 걱정이 되어 묻는 송씨부인의 입을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막음을 시켰다. “예에.” 송씨부인도 고공의 심정을 알고 신음하듯 대답했다. “으음” 고공은 깊은 신음을 토하고 “여보, 부인!” “예.” “우리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요?” “덮어둡시다.” “에엣?” 송씨부인은 저절로 경악하듯 신음을 토했다. “덮어야 하오. 우선 대상이나 치루고 봅시다.” 고공은 신음성을 섞어 겨우 말했다. “어련하신 결정이겠소. 저는 걱정 마시고, 요량 것 하세요.” “그럼 이것을 태우시오.” 고공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송씨부인에게 건네주었다. 송씨부인도 섬섬옥수가 심하게 떨렸다. 호흡도 불규칙적이다. 마치 도둑질을 하듯이 가슴을 조이며 편지를 재떨이에서 태웠다. 이제 고좌수로 부터 전해온 편지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고좌수는 죽지 않았다.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두면 나타날 것이다. 무덤 속에 있어야할 고좌수가 살아있으니 말이다. 고공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수수께기를 안고 중병을 앓게 되었다. ‘중병(重病)’ 이것을 풀어서 위중한 병, 중태에 빠진 병이라 한다. 또 달리 표현하여 중환, 중아, 중질, 가질, 대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병이란 원래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정상이지 않는 상태가 아닌가. 그리고 병이란 병균에 의하여 발병하는 것이 통례가 아닌가. 물론 병인을 알 수 없는 병은 많다. 심화로, 풍으로, 기계적 장애로, 허다한 병이 많지만, 죽었다던 아비가 살았다고 병이 난 것은 또 무슨 불효막심한 짓이란 말인가. 흔히 속말로 죽은 지애비가 찾아와도 반기지 않을 놈이란 말이 있다지만 세상에는 죽은 아비가 살아 돌아와서 박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공은 지금 죽었다고 장례까지 치른 아버지의 편지를 받지 않았는가. 죽고 만2년 동안 무덤에 있는 줄로 안 고좌수가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 고좌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편지가 화근이 된 것이다. 고공은 아버지의 삶을 반겨할 수 없었다. 눕고 말았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지? 내일은 대상, 탈상 날이 아닌가? 어찌할 것인지? 아비 제사 날을 당하여 꾀병을 앓고 누울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고공이 몸져누웠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없었다. 당신이 만약 고공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날은 고좌수의 제삿날이다. 잠 한숨 자지 못한 고공은 캥한 눈으로 상주자리를 지켰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 되어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초조와 번민이 극을 달리고 있었다. 좌불안석이었다. 이런 희극도 비극도 아닌 현장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희대의 꼭두각시놀음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이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밖에 달리 어떠한 방안이 없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 천하에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얼마나 살 세상인지는 모르나 제가 살려고 하니 할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를 두고 지금 어느 누구의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무덤에는 어느 누가 들어가서 어머님과 나란히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공은 벅차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삭이면서 상주자리를 호성과 함께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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