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과 돈만이 일본에서 돌아오고 고공은 기동을 시작했다. 용부는 비록 방화범으로 수형생활을 시작했지만, 조국애에 불타는 청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공사판은 돈이 일을 하는 까닭에 차질 없이 계속되었다. 고공은 현금이 될만한 재산을 팔아 야쿠자 오야붕의 화해를 얻어냈다. 굴개방축 공사장에도 필요한 만큼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런 동안 고공의 재물은 거의 소진되고 오히려 은행 빚이 더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한들 앞에 3백 두락은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이 논이야말로 삼년대한(三年大旱)에도 끄덕치 않을 옥답중의 옥답이었다.
오늘은 농민들의 여름 명절이라는 백중이다. 물때로는 일곱물이다 달이 한껏 힘이 생겨서 바다물을 힘차게 끌어당기는 사리다. 동쪽과 서쪽에서 방축을 막기 시작하여 최상단의 마지막돌이 한 가운데서 닫는 날이다. 고공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소를 10 마리 잡았다. 원근동의 노인, 아낙네, 아이들까지 모두 초청하여 기념식을 갖는다. 요새말로 완공기념식을 가진 것이다.
물론 이날의 진객들은 도청, 군청, 총독부 관리들과 부호라고 말하는 친일파 지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보다 신나고, 힘이 젊은이처럼 넘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칠십 고령을 거뜬히 넘겨도 지팡이가 필요치 않는 송영감이었다. 송영감은 난생처음 치르는 대공사의 사회자가 되어 있었다. 모든 예의범절을 주관해온 그였기에 처음 당하는 일이지만, 그의 머리에는 프로그램이 환했다.
드디어 제물을 예를 갖추어 차리고 법도에 맞게 홀기를 낭독했다. 고공을 위시한 귀인들을 청하여 지신과 용신께 절을 시켰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목청을 돋구어.
“오늘 백중 절기를 맞이하여 우리의 꿈과 희망인 굴개 방축공사가 완공되었다는 것을 천지신명과 용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특별히 말씀 드리고 싶은 바는 이 땅이 열리고 가장 큰 덕성을 갖춘 고명하 참의영감의 어진 덕을 만방에 선양하고 싶습니다. 고명하 참의 영감님께서는 그간 수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공사를 성취시켰습니다. 우리 농사꾼들의 배고픈 설움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자 자신의 만석 재물을 쏟아 부어 이 사업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이런 고귀한 고명하 참의 영감님의 만수무강과 행복을 위하여 힘차게 박수를 칩시다.”
송영감의 당찬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여자만이 떠나갈 듯이 울려 퍼졌다. 송영감은 박수 소리가 끝나자
“이 방축 공사는 천우신조로 인하여 완성된 공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양껏 먹고 마실 수 있게 음식이 마련되었지만, 또 한 가지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 있으니, 이 음식은 모든 사람들의 정성으로 바쳐질 것입니다. 이는 고명하 참의 영감님의 분부이오니 여러분은 이 행사에 적극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저기 양쪽 수문 위에 가져다 둔 음식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은 그것이 자못 궁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하늘의 계시가 있어 와동 마을 모든 주민이 힘을 합쳐 준비한 음식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알려고 하시지 마시고 모든 음식을 다 잡수시고 이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송영감의 연설이 여기서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궁금해 했다. 그러나 곧장 먹거리판이 시작되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에 열중이었다
방축 길이 2마장이 넘고도 남을 뚝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흩어져서 제마다 술을 마시고, 떡을 먹고 한껏 즐겼다. 이때 고명하에 의해서 하나의 선물이 전달되었다. 그것은 이 뻘땅을 5년 이내에는 누구든지, 어디 사는 사람이든지, 공짜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선물이었다. 이 말은 삽시간에 뚝방 서쪽에서 동쪽까지 전달되어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일어났다.
“5년씩이나, 5년씩. 이 물 좋고 바닥 좋은 곳을 5년씩. 영파쟁이를 보면 당년에 2백 두락은 거뜬히 농사를 지어먹었는데...”
“글세 말일세. 고공이 영 망했다던데, 헛말이구먼. 아들 땜세. 이 방축 땜세, 망했다고 혔는디 헛말이구만...”
일 잘하는 사람들은 혀를 내어 두르며 내일부터라도 작답을 해야겠다고 벼루기도 하였다.
“어이 우리 오늘밤부터 말목을 꼽세.”
“이 사람아, 여부가 있겠나. 우리 집은 삼부자가 농사를 지으면 이런 땅 한 섬지기는 거뜬히 짓겠네.”
“나도 여부가 있는가. 헌데, 암만해도 와동사람들 텃세가 심할 걸세 그려.”
“나는 처가가 와동이니 이럴 때 처가집 덕 좀 볼라네.”
기념식에 참여했던 원근동(遠近洞) 사람들은 제마다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 꿈에 부풀어 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개펄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하는 동안에 썰물이 되고 있었다. 그러자 수문등에 준비한 또 다른 음식이 전달되었다.
“뭣 인가? 이번에 나온 음식은 뭣이당가? 나는 인자는 줘도 못 먹 것네.”
“나도 마찬가질세. 또 다른 잔치라니 그것은 사양할 라네.”
양쪽 수문등에서 부터 전달된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제각각 지꺼렸다.
이때 또 다시 송영감의 연설이 있었다.
“여러분! 동쪽과 서쪽에서 전달된 이 음식을 받으십시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요 메밀 죽이오. 도깨비, 망량(魍魎)이가 좋아한다는 메밀 죽이외다. 고명하 참의님이 특별히 하늘의 계시를 받고 준비한 것이외다. 방죽은 용신의 지배하에 있지만 기실 도깨비, 망량이가 지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요. 그래서 이 음식을 특별히 준비했으니, 여러분께서는 메밀 죽을 받아서 축수를 드리고, 이 방축에 부어주기 바라오. 여러 손님 분들의 간절한 축수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럼 다들 축수를 드리고 편히 돌아가십시오.”
송영감의 무대였다. 고공은 숙원의 공사를 장장 4 년여 만에 완공을 보았다.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공사에 론 재물의 손실도 컸다. 그러나 고공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이 공사를 벌리지 않았다면 이곳에 쏟아 부은 돈만큼 소리 소문도 없이 왜인들에게 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돈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몫하고 있었다. 여러 관청의 귀빈들의 접대를 그가 맡았다. 특이나 총독부와 광주에서 나온 고관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했다. 호주머니도 채워서 보냈다. 일이 모두 끝나고 돈만은 고공과 헤어지면서
“사돈어른, 참으로 큰일을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허나 용부 일이 미진해서 그것이 마음에 걸립니다만, 총독부 고관이 하는 말이 용부가 형이 확정되면, 조선으로 데려온다고 했으니 참고 기다립시다.”
“고맙소. 사돈! 진정 고맙소. 허나 제가 모든 것을 천명에 맡기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해서 오늘도 농민들에게 뻘땅을 작답을 해서 5년씩 마음대로 지어 먹으라 한거요. 시방 마음은 작답도 않을 작정입니다. 보십시오. 내가 만약 작답을 해서 수익을 보고 보면 왜인들이 가만있겠소. 또 중세를 부과할 겁니다. 하하하하.”
고공은 흔쾌히 웃었다.
“허지만 사돈어른! 어른의 빚이 얼만 줄이나 아시고 하는 말씀입니까?”
“알아요. 사돈, 다 사돈의 힘으로 돈도 끌어 왔잖소. 허나 나중에라도 이 땅을 다 내어놓으면 아찌구찌가 아니겠소. 아니 그렇소. 사돈. 아하하하.”
고공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사태평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넓은 굴개 들판을 빚 청산에 쓰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돈만은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연작(燕雀)이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리요.’
고공은 자신을 걱정하는 돈만을 전송하면서 입 속으로 그렇게 뇌었다. 그랬다. 고공은 이미 범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평상인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린 그였다. 둥구나무 사건, 점화의 죽음, 신사(神社)의 건립과 아버지 고좌수의 냉소가 그를 변하게 했다. 더 큰 변화는 최익손의 행방불명, 고좌수의 비명횡사, 아들 용부의 옥사리로 말미암음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인력으로 피할 수 없는 천벌 내지는 횡액이라 믿었다. 그런가하면 호성이 때문에 딸 윤심을 야간혼인식을 시켜야 했던 아픔도 한 몫했다. 그런 곤욕을 겪다보니, 변화를 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강한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 무엇엔가 쫓기는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발상을 생각했다. 도깨비와 망량이라도 달래야 겠다고 메밀 죽을 방축에 뿌렸던 것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묘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메밀 죽 사건은 고공이 홀로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고공이 늘 점화를 잊지 못해 기도처럼 염을 한 탓인지, 칠월칠석날 밤, 점화의 선몽이 있었다.
‘서방님! 도깨비를 사귀세요. 망량이를 사귀세요.’
단지 그 말을 몇 번인가 되 뇌이고 살아졌다. 고공은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지어낸 것이 메밀 죽 사건이다.
‘남말 무서워하고 살았나 뭐. 세부측량 때도, 방축 공사도, 좋다고. 남이 뭐라 해도 좋다고. 웃음꺼리가 되도 좋아.’
한 번 먹은 마음이면 기어코 하고야 마는 그의 성미가 아니던가. 결국 고공은 메밀 죽을 오십 솥 이상 쑤어다가 도깨비와 망량이에게 재물로 준 것이다.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호성을 위시하여 송영감까지도 말렸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준공식을 마치고 나니, 날씨가 흐려졌다. 검은 구름이 남쪽에서 몰려왔다. 칠월 보름 백중 달이 어둠에 갇혀 버렸다.
“경리부장님, 큰비가 올 것 같소. 별이 안보여.”
송영감 아들 본동이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동, 인자 걱정 없어.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방축공사가 완전히 끝났으니.”
경리부장이 한바 곁 사무실에서 서류뭉치를 챙겨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누가 아니래요. 이만하기 다행이제.”
천수의 말이다.
한바만 철수하면 모든 일은 다 끝이 난 것이다. 다만 현장사무소는 당분간 경리부장과 천수 그리고 본동이 맡아보며 뒷처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특히 본동은 수문관리를 맡았다. 사리 때는 수문을 열어주고, 조금 때는 닫아주는 일이었다.
“본동! 큰비라도 올려나 봐.”
경리부장이 뒤따라오는 본동에게 말했다.
“글세 말이요. 아부지는 책력을 보시고 앞날이 가물거라 하시던데...”
본동의 아버지 송영감은 책력을 통하여 날씨를 곧잘 점을 쳤다. 크고 작은 행사의 택일도 그렇게 했다.
“그래, 어른이 그리 말했으면 비는 안 올 것인디.”
경리부장은 송영감을 크게 신임하기에 그리 말하다가
“본동 저길 봐. 저길. 저것이 도깨비불이 아닌가!”
소리쳤다.
“부장님! 맞아요. 나도 봤소만 미심쩍어 말 못 했소만...”
“히히. 방축을 도깨비가 쭉 늘비했소. 제 눈엔 도깨비가 나라비를 선 것 같소.”
천수가 맞장구를 쳤다. 하늘은 칠흑이었다. 보름밤이 무색했다. 바다는 일곱물이 참 들면서 묘한 하모니를 만들며 울부짖고 있었다. 도깨비불은 장사진을 쳤다.
“이보게 본동! 낮에 모인 사람들 보다 도깨비 떼가 더 많은가 보이.”
“글세요.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겠소.”
“옛날에 도깨비 환심을 사서 거부(巨富)가 됐다더니 거짓말이 아니구만...”
“참말로 요상시룹소. 어서 갑시다.”
세 사람은 제각각 한 마디씩 하며 한들 끝에 왔을 때, 어디서 어떻게 알고 몰려왔는지 우비를 갖춘 사람들로 우왕좌왕했다.
“참말로 하늘이 낸 사람이시.”
“누구 말이요?”
“하아, 이런 멍텅구리를 봤나. 고공 말일세. 고공.”
“왜 그래요?”
“이 사람 봐라. 이 사람 . 이것도 눈이라고 달고 댕겨. 이 사람아!”
“너무 안채 마시오. 나는 까깝시룹소.”
“이 사람아, 저기 방축에 불이 낮에 준 메밀 죽을 묵것다고 달려든 도깨비란 말이시.”
“하이고, 너무 안채 마시오. 어찌 저것이 무신 도깨비 불이라요. 개똥불이제.”
“허허, 여그 똑똑한 놈 하나 인자사 태어났구만. 어라, 이 미럭둥이야. 개똥불이 저렇게 크게 운집을 하겠어.”
그는 참다못해 주먹밥을 먹이면서 말했다. 아무튼 근동 사람들은 이날 밤 별난 구경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