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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눈 먼 마을의 연인
 
최민호   기사입력  2020/09/01 [15:30]

 1.


“선생님, 4월1일 장애인의 날에 강연을 해달라는 청탁이 왔습니다만,..
시각 장애인 협회라고 하는데요.“

보좌관이 선생의 심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명강으로 유명한 전국적인 명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특별한 강연...

“파워포인트나 영상자료는 준비 안하셔도 된다고 하네요. ㅎㅎㅎ.”

“허허, 그렇겠군.”

4월1일.

협회 강당은 ‘청중’들로 대만원이었다.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손에 잡히듯 들린다.
신경쓰지 않았다. 강연이 시작되었다.

“여러분에게 어떤 강연을 감히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 기억났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였던 것 같아요. 40년이 넘었나요? 하지만 그 스토리는 제 동맥을 뛰게 하는 영원한 심장같답니다. 그 이야기 들어 보시겠습니까?“
“예!”

청중들은 소리 높여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2.


남미 안데스 산맥의 어느 깊숙한 오지.

청년은 깊은 산 속을 해매는 사냥꾼이었습니다 .
어느 날 청년은 깊은 숲속에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딘지도 모르고 숲 속을 헤매던 청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천 길일까 만 길일까.
몇 길이 되는지도 모르는 낭떠러지에서 한참을 떨어졌습니다. 청년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릅니다.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청년이 정신을 차리자 그들은 환호를 지르며 기뻐하였습니다. 숲속에 정신을 잃은 그를 발견하여 그동안 보살펴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천천히 살펴보던 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눈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청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마을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보던 그들 또한 흠칫 놀라곤 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없는 무엇이 청년에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청년의 눈을 벼랑에서 떨어지면서 생긴 상처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라진 그 상처에 가끔 물이 고이는 것을 만져보던 그들은 청년을 아주 딱하게 여겼습니다.

청년은 그들에게 불쌍한 장애인으로 취급당했습니다.
청년은 눈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지 설명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생활에는 아무 지장을 느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더듬으며 무엇이든지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그들을 보면서 자기는 초능력자라 여겼습니다.
그들보다 몇 배 앞을 볼 수 있는 청년은 그의 능력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그는 거리낄 것 없이 달릴 수도 있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돌로 잡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능력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할까요.

우월감에 빠진 청년은 어느 날 몰래 그들 뒤로 돌아가 뒤통수를 때려 놀래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쳐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들.
그들은 볼 수 없지만, 무엇인가를 느끼는 감각은 청년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답답한 것은 청년이었습니다.
보는 것 이외에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밤이 되면 청년은 그야말로 곤경에 빠졌습니다.
불빛이 없는 세상에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밤도 낮도 똑같이 자유롭게 다녔습니다.
밤만 되면 꼼짝 못하는 청년을 사람들은 늘 측은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그 쓸데없이 양 이마 밑에 쩍 갈라져 축축하고 흉측한 상처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상의하곤 했습니다. 수술로 봉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기겁했습니다. 그런 말만 나오면 그는 도망갔습니다.
마을을 빠져나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도 수없이 해보았지만,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마을에는 나가는 길도 들어오는 길도 없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청년은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탐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경쟁도 없었습니다. 누가 예쁘다든가 밉다든가 하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누구나가 동등했습니다. 물욕이 없으니 싸울 일도 없고, 경쟁이 없으니 걱정도 없었습니다.
서로 나누어 가지니 모자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아끼고 있었습니다. 그들 생활에는 사랑과 평화가 항상 따뜻하게 깃들여 있었습니다.

유난히 청년에게 연민을 느끼고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장애인인 청년을 진심으로 가엽게 여기면서 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밤이면 더욱 그랬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처녀를 보면서 이 마을에서 정착을 할 것인가도 생각하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고향으로 갈 희망은 없었습니다.

청년은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처녀와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녀의 부모도 청년과의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다만, 조건을 부여했습니다.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꿰맨다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이 조건만은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청년은 밤잠을 못자며 고민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 손에 끌려 수술을 하자는 전날 밤.
청년은 도저히 눈을 봉합할 수는 없어 마을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며칠이나 되었을까..
다시 눈을 뜬 청년의 눈앞에 사람들이 어른거렸습니다.
꿈에 그리던 고향이었습니다.
잃었던 청년이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청년은 비로소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마 밑에 두 개의 껌벅거리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마을에 다시 적응하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자기 경험을 마을사람들에게 들려주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바보취급까지 당했습니다. 친했던 마을 사람들이 멀어지게 느껴졌습니다.
청년은 마을 사람들이 새삼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시도 평화로울 때가 없었습니다. 사냥감을 놓고 서로 가지려고 싸웠습니다. 질투에 눈이 먼 여자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남자들은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죽이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걱정과 미움이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던 이런 일들이, 눈이 없는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사랑의 삶과 비교되면서 청년은 마음의 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병은 이유를 설명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병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살벌하고 무섭기만 한 이 세상에 실망한 청년은 차라리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청년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숲속을 향해 뛰어 나아갔습니다. 무조건 앞을 향해 뛰었습니다. 그리고 낭떠러지에 몸을 던졌습니다.

또 며칠이 지났을까요.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청년에게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눈 먼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그를 맞아주고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청년을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처녀도 곁에 있었습니다.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상처에서 나오는 눈물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정성껏 닦아주었습니다.

얼마 후 청년이 그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 상처를 치료해 주세요.
저는 그동안 제가 장애인인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알았어요.
누가 장애인이고, 무엇이 장애인가를 알았어요. 제 상처를 치료해 주세요. 제 눈을 꿰매주세요. 이제 저도 정상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처녀와 온 마을사람들은 내 일같이 기뻐하며 청년을 사랑스럽게 맞아주었습니다.


3.


청중은 시종 기침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경청하였다.
느껴졌다. 그들의 감동이...

이야기는 책에서 읽었지만 후반부의 이야기는 사실 선생이 만든 것이었다. 잡지에서는 눈 없는 마을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끝났었다.
허나 선생은 다시 눈 없는 마을로 돌아와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각색하였다.
그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선생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
사실이지 않은가? 누가 더 장애인인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레같이 터져 나오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선생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려다 그만 두었다.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강단에서 내려오기 위해 손짓을 하였다.
얼른 보좌관이 흰 지팡이를 선생이 손에 쥐어 주었다.
선생은 흰 지팡이를 능숙하게 더듬으며 강단을 내려왔다.

그렇잖은가?
누가 더 장애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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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1 [15:30]   ⓒ 대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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